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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기업가’ 전성시대, 그러나 어설픈 흉내는 내지마라

★★★★☆★☆★☆★☆ 2015. 6. 12. 16:27

 기업가’ 전성시대, 그러나 어설픈 흉내는 내지마라

ByGyu-hak Moon

Reuters
엘론 머스크 테슬라 CEO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투자 실무를 익히던 시기에 오늘날 글로벌 벤처계의 스타로 부상한 엘런 머스크(Elon Musk)와 만난 적이 있다. 한국식 표현으로는 심사역 (Venture Associate)으로서 그가 창업한 짚투(Zip2)에 투자하며 그를 지켜볼 기회가 있었는데 솔직히 나는 그가 이렇게까지 주목 받는 인물이 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물론 나의 통찰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었겠지만, VC의 실무자 입장에서 그는 핵심에 집중한다기 보다는 다소 산만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엘런 머스크의 산만함은 짚투를 컴팩에 매각한 이후 더욱 적극적으로 발현 되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 주목 받고 있는 ‘핀테크’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페이팔(Paypal) 창업에 함께 했다가 그것도 매각하고 난 이후에는 스페이스엑스(Space X), 테슬라 모터스(Tesla Motors)를 비롯해서 솔라시티(SolarCity), 하이퍼루프(Hyperloop) 등 잇따라 새로운 기업들을 탄생시켰다. 이른바 앙트러프루너가 연속적으로 창업하는 것은 미국에서는 다반사로 있는 일이지만 엘런 머스크가 창업한 회사들의 조합은 그야말로 ‘초광대역’이다. 인터넷 서비스 회사에서 금융, 항공우주사업, 자동차, 태양광 발전에서 위성사업까지. 한 분야 만으로도 세상을 뒤흔들 것 같은데 이 모든 것을 포괄하고 있다.

전세계가 엘런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고 대부분 칭송과 찬사로 그를 격려하고 있다. 이 정도의 규모로 사업을 꾸리는 모습은, 다소 산만하다고 해도 박수를 보낼만하다.

이처럼 정말로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사업을 영위하는 사업가들이 엘런 머스크 만은 아니다.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고 해도 좋을 만큼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다.

미국에 엘런이 있다면 영국에는 리차드 브랜슨 (Richard Branson)이 있다. 어쩌면 엘런의 문어발식 경영의 선배라고도 볼 수 있는 리차드의 행적은 그야말로 방향을 가늠하기 힘들 정도다. 그는 1967년 메일로 주문을 받아 레코드 판을 배달해주던 음악 유통 사업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자그마치 350개 회사를 가지고 있다.

난독증에 고교중퇴의 학력으로 재무제표조차 잘 읽지 못하는 그가 그 이후에 벌였던 사업은 항공, 철도, 레저, 스포츠, 미디어, 금융, 건강의료, 환경, 그리고 우주여객선사업까지 실로 다양하기 짝이 없다. 항상 본인 스스로를 마케팅 도구로 활용하는데 주저함이 없는 그는 열기구를 타고 여행을 하다가 사고가 나서 죽을 뻔 한 적도 있을 정도로 모험심이 충만한 기업가이다. 사업의 목적이 ‘돈을 벌기 위해서’인 적이 단 한번도 없다는 그가 최근 들어서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지속가능한 지구’를 만드는 일이라고 한다. 리차드는 앨런보다 더 심각하게 도전을 즐기는 사람이다.

나는 이런 류의 사람들을 ‘앙트러프리테이너(Entrepretainer, Entrepreneur와 Entertainer의 조합)’라고 부르고 싶다.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 절대로 사업화를 하지 않는 브랜슨이나, 영화 ‘아이언맨’의 모델이라고까지 우상화되고 있는 엘런이나 둘 다 이 범주에 들어가는 새로운 시대의 기업가가 아닐까 한다. 권위도 내세우고, 격식도 따지며, 점잖고 세련된 매너까지 갖춘 20세기형 기업가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다소 만화와도 같은 행보를 벌여 나가는 이들을 ‘기업가’라는 이름으로 묶어 두기에는 너무나 심심하다. 그들의 기업을 일구는 모습 그 자체가 대중들에게 재미와 신기함, 또 희망을 주니 ‘엔터테이터’로 분류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색다른 기업가의 탄생은 언제나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이들의 화려한 행보와 겉모습만을 흉내 내려는 사람들이 늘어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앨런이나 리차드는 그들의 도전을 즐기면서도 기업가로서의 기본적인 자세를 갖추려고 노력을 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리차드의 경우에는 그런 도전의 와중에 많은 수익도 창출하고 있으며, 앨런의 경우에는 비록 그의 꿈이 다소 허황되고 망상적인 모습일지라도 투자자들이 대규모의 자금을 투입하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간혹 몇몇 스타트업을 일군 창업가들이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부분에 매진하기 보다는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사업과 크게 관련이 없는 네트워킹에 몰두하고, SNS 등을 통해서 작은 성공을 자랑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가 있다. 하지만 자랑이 말잔치로 끝나서는 안 된다.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자신만의 장기가 있어야 한다.

스타트업이나 벤처기업이 기존의 시장 혹은 새롭게 만드는 시장에 뛰어들기 위해서는 제한적인 자원을 가지고, 그리 넉넉하지 않은 시간 안에 승부를 봐야 한다. 따라서 창업가들이 초기에 가장 신경써야 할 덕목은 한계 수준을 넘어서는 고도의 집중이다. 수없이 많은 난관들이 가로놓여져 있는 초기 시장 진입단계에서 그 집중도를 상실하면 상대적으로 부족한 자원을 낭비하는 상황을 맞게 되고, 급기야 초기 단계 기업들에게 가장 무서운 적이라고 할 수 있는 ‘시간’과의 싸움에서 패배를 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앨런 머스크나 리차드 브랜슨이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그들이 아무런 자랑거리가 없는데 그저 떠벌이가 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우선 주목하기 바란다.

글쓴이 문규학은 소프트뱅크코리아, 소프트뱅크벤처스의 대표이사다. 문 대표는 1996년 미국 실리콘밸리 소재 소프트뱅크 테크놀로지 벤처스(SoftBank Technology Ventures)에서 벤처캐피털리스트 경력을 시작해 그간 수많은 스타트업에 투자를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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